rheinland 님의 블로그

토탈워 : 엠파이어 - 2화 사보이아 - 스페인 동맹군 본문

게임

토탈워 : 엠파이어 - 2화 사보이아 - 스페인 동맹군

rheinland 2025. 2. 11. 10:00

 
시작에 앞서   
          
본 게임 연재는 지독한 역사적 상상 + 컨셉플레이로 취향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 게임 내 턴제 년수는 12턴으로 1년씩 늘어납니다.
- 게임 내 병력표기를 역사적 상상에 맞도록 병력뒤에 0을 하나 더 붙여서 표기합니다.(ex 120 - 1200명)
- 게임 내 재화는 파운드로 표기. 금액의 뒤에 만을 붙여 현실감을 더합니다.  (ex 100 - 100만 파운드) 
- 장군들의 이름이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고, 가상 장군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바람이 흩날리는 들판.
전장에서 부관의 말을 듣고 있는 한 장군.
"너무 무리한 진군이였습니다.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알제리 방어전에 성공한 뒤, 병사들이 쉴틈없이 모래바람을 헤쳐가며, 트리폴리타나로 향해 적과 대치한 때였다.
"하는 수 없네. 모로코왕국의 선전포고를 받은 이상 후환을 줄이지 않으면 안될 일이야"
적의 성벽을 바라보며 일제 발포와 진군을 명령하는 비토리오 사케리 장군이였다.
실제로 모로코왕국 알제리의 동쪽 지브롤터해협의 동 지중해로 통하는 관문을 지키고 있었고,바르바리제국이 약화되었다고 해도 서쪽의 트리폴리타나 지역이 남아 있었다.
모로코왕국과 전쟁에 돌입한 뒤, 바르바리제국의 협공을 당하면 아프리카 군단은 전멸할 상태였다.
두 국가가 이슬람교도들의 국가임도 불안 요소 중 하나였다.
  

트리폴리타나를 향해 포격을 날리는 사보이아 군.

 
 

사보이아 공국이 동원한 야전포병부대.

 
당시의 포는 성벽을 부수는 것 외엔 그다지 큰 활용성이 없었다. 그저 직선으로 날아가는 무거운 포탄은 전방에 진군하는 보병대들에게 뒤에서 날라오는 무서운 철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무거운 포병대를 지중해 건너 끌고 온 사케리 장군의 판단은 적중했다.
성벽이 부서지자 몇 안남은 바르바리제국 병사들은 차례차례 항복하기 시작했다.
 
 

트리폴리타나 지역을 점령한 사보이아 공국.

 
그렇게 1702년 말 사보이아 공국은 알제리 - 튀니스 - 트리폴리타나를 잇는 아프리카 대륙을 점령하게 된다.
함락이 끝나고 급하게 그들을 알제리로 수송하기 위한 배편이 도착하였다. 
모로코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알제리는 항상 불안을 품고 있었기에,사케리 장군은 알제리로 급히 이동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알제리에 도착한 사케리 장군은 안정되지 않은 점령지 세곳을 정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나, 
차근차근 병력을 알제리에 집결시키고 있었고, 생각외로 모로코왕국은 국경을 넘지 않았다.
그렇게 1705년 6월 모로코에서 알제리로 진군하는 부대를 사케리 장군이 인근마을에서 요격해 승리하게 된다.
 

적장군의 사망으로 승기를 잡은 사보이아 군.

 
기세를 몰아 사케리 장군은 모로코왕국의 대 부대를 부순 직후 정비할 시간없이 모로코의 수도로 향한다.
대 병력을 이겼기에 본국에는 거의 없을것을 예상해서 진격하였으나, 의외로 수도방위군은 건재했었다.
"우리만으로는 쉽지 않겠군. 스페인군이 협공에 힘을 보태면 나을 것이니 수도로 연락하게나."
지브롤터해협의 관문엔 남쪽은 모로코왕국의 지배하지만 북쪽엔 스페인의 지브롤터 마을이 위치하고 있으니, 스페인의 협조만 있으면 쉽게 함락할 수 있어 보였다.
2개월 뒤, 스페인의 참전 허가가 난 뒤, 사케리 장군은 군을 이끌고 모로코로 향한다.
 

모로코 공략 전투 시, 나타나는 스페인 동맹 군대.
사보이아 군 민병대의 일제 사격.
승기를 잡고 쇄도하는 스페인군.
사보이아- 스페인 동맹군에 의해 함락된 모로코왕국.

 
1705년 9월 사보이아 공국은 모로코까지 점령하는 쾌거를 올렸다.
이는 사보이아 공국에 있어 대서양과 아프리카로 나가는 교두보이며, 이곳은 무역 전략 거점으로,매우 가치가 높은 곳이였기 때문에 토리노 왕국에서는 이를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모로코왕국 함락 후엔 토리노왕국은 점점 그 위세와 부가 대단해졌기에. 허나 아프리카의 상황은 더 더욱 녹록치 않았다. 이미 점령한 바르바리 제국의 땅 역시 정비되지 않은채,모로코 까지 점령하여, 사케리 장군에겐 방위거점만 늘어났을 뿐. 실질적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점령한 이후 3개월 뒤, 1705년 12월 모로코 왕국 반란군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나,
이들의 주변 마을 유린까지는 막지 못하여, 국고에 손상을 초래할 수 밖에 없었다.
 

병력을 분할해, 소수의 군만으로 반란을 잠재우는 사케리 장군.
안정된 아프리카 무역으로 인해 부를 쌓고 있는 토리노왕궁.

 
이와 대비되듯, 토리노 왕궁은 상아 무역으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에 토리노 왕궁에 있는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는 토리노왕국의 궁전 건축을 의뢰하게 된다.
"이미 사보이아 공국은 그 위상이 아프리카 전역에 펼쳐져 있고, 수많은 재화가 몰려들고 있다.
이럼에도 조그마한 관저에서 생활한다는건 말이 안되지. 얼마가 들어가도 좋으니 왕궁을 건설하도록 하라"
 

스웨덴과 러시아의 전쟁소식.

 
3년뒤, 1708년 1월 토리노 왕궁은 건설이 되어 그 웅장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같은 시기, 스웨덴과 러시아는 국경분쟁으로 인한 전쟁이 발발하고,스페인은 옆나라인 포르투갈을 점령한 상태.
프랑스와 스페인은 여전히 서로의 팽창을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1년뒤, 제노바의 옆나라 베니스(베네치아)에서 사보이아 공국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베네치아는 수도 베니스와 파트라스 지역과 아테네를 점령중이였고, 해상 무역권을 잡고 아프리카를 점령중이며, 궁전까지 건설한 사보이아 공국의 팽창을 두고 볼수 없어 일으킨 전쟁이라 한다.평온하던 토리노 왕궁은 불안해졌다.
"당장 비토리오 사케리 장군을 부르게!"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는 모로코에서 체제중인 장군을 찾는다.
비록 토리노왕궁의 동쪽 국경엔 스페인과 제노바가 있으나, 베니스에서 마음만 먹으면,군대를 보내 수도를 함락할 수 있을 터. 본국엔 장군도 없이 토리노 수비대만 지키고 있는데 그 역시 전쟁을 해보지 않은 왕이라 할지라도,외교에 도가튼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현재 무역만 하는 프랑스. 자국과 동맹국인 스페인.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베니스라면,서쪽 국경에 있는 프랑스와 베니스의 동맹 상태이고, 프랑스가 이탈리아 반도로 진격할 요량이라면,사보이아 공국은 짓밟힐 것이라는 걸. 왕궁이 함락되면, 원정군 따위 무의미하며,무역으로 버는 재화따위 무의미 할 것이라는 걸 아메데오 2세는 간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