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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워 : 엠파이어 - 3화 영향력과 억제력

rheinland 2025. 2. 16. 10:00

시작에 앞서   
          
본 게임 연재는 지독한 역사적 상상 + 컨셉플레이로 취향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 게임 내 턴제 년수는 12턴으로 1년씩 늘어납니다.
- 게임 내 병력표기를 역사적 상상에 맞도록 병력뒤에 0을 하나 더 붙여서 표기합니다.(ex 120 - 1200명)
- 게임 내 재화는 파운드로 표기. 금액의 뒤에 만을 붙여 현실감을 더합니다.  (ex 100 - 100만 파운드) 
- 장군들의 이름이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고, 가상 장군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1700 ~ ????)

사보이아 공국의 공작. 독립 군주.
이탈리아의 북서쪽 토리노의 군주로 비토리오 사케리 장군에게 군사를 내어주고,왕궁에서 사치를 부리며 지내고 있다. 그렇다고 무능한 군주는 아니였는지, 1700년 바르바리 제국과의 싸움에 수비대의 거의 대부분을 내어주며, 궁의 안전은 뒷전으로 하고 총력전을 이루어내도록 배포도 컸으며, 1702년 국고가 풍부하지 못함에도 스페인과의 동맹을 맺어, 주변의 안전을 꾀했으며, 이는 후에 스페인 - 사보이아 공국의 대 모로코 전에서도 진면목을 발휘한다.허나 점차 쌓여가는 부로 인하여 토리노 왕궁을 건설하여 국고를 낭비하게도 하였으며, 거듭되는 전쟁으로 인한 소모를 막을 생각은 없이, 다혈질인 점도 작용하여, 후에 사보이아 공국의 위험도 초라하게 된다.

 

비토리오 사케리 장군

비토리오 사케리(1700~????)

사보이아 공국의 장군. 공작 아메데오 2세를 따라 토리노 왕궁의 수비대 사령관을 지내다가,바르바리 제국의 자국 무역선 나포 사건(1700년 2월)으로 분노한 아메데오 2세의 명령에 따라,왕궁 수비대의 80프로 병력을 이끌고 바르바리 제국의 수도로 향하며, 장군의 운명은 크게 변한다.토리노의 수비대를 빼왔기에 당시 사케리 장군은 마음이 급했고,그럼에도 차근차근 아프리카 지역을 점령해 나가며 입지를 쌓고 있었다. 1706년까지 바르바리제국와 모로코를 평정한 사케리 장군은 토리노 왕궁을 건설될 1708년까지 아프리카 지역에서 군을 정비하고 있었다. 사보이아 공국의 현재 입지는 사케리 장군이 거의 다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스만 제국과의 첫 전투.
전란에 휩싸이는 유럽대륙.

 

이슬람 지역에 대한 비토리오 아메데오2세의 공세로 인해 이슬람 교도 전체에게 적이 되어버린 사보이아 공국.

이윽고, 트리폴리타나 근처에서 오스만 정찰대와 첫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두게 되었으나,오스만 제국은 그 위용이 대단해서 토리노 왕궁에서도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베니스(베네치아)의 선전포고로 인해 수도인 토리노도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

이미 왕의 자리에 오른 아메데오 2세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오스만 제국과 첫 전투를 벌이고 있는 사케리 장군에게 긴급호출을 하게 된다. "이미 아프리카 지역은 평정한 걸로 알고 있으니, 속히 파렴치한 베니스인들을 몰아내도록 하게!" 이는 사케리 장군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이미 트리폴리타나 동쪽으로는 카이로나 이스탄불 같은 오스만제국의 거대 도시들이 즐비해 있고, 그 첫 정찰대와 막 전투를 치른 참인데 베니스와 전쟁하라는 이야기는 아프리카 지역을 포기하라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는 수 없군." 그렇게 약간의 수비대만 트리폴리타나에 두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사케리 장군이였다.

 

베니스가 함락한 도시 모레아 주를 공략하는 사보이아 군.

 

 

사케리 장군이 자리를 비운사이 오스만 제국의 공격으로 인해 트리폴리타나를 잠시 잃었으나,

배를 돌려 다시 돌아와 트리폴리타나에 오스만 제국을 일소한다.

그 사이 본국으로부터 갔던 수비대 병력(16050명) 이 그리스 지역의 모레아(15300명)를 공략해 점령.

이곳을 지키던 베니스측 장군 주세페 아세마나는 전투 중 사망하게 된다.

오스만 제국

숭고한 오스만국(오스만 튀르크어: دولت عليه عثمانيه 데블레티 알리예이 오스마니예, 영어: Sublime Ottoman State) 또는 오스만 제국,튀르키예 제국(영어: Turkish Empire) 오스만 튀르키예,혹은 단순히 튀르키예는 14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동남부,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대부분을 통치하던 광대한 제국이다.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Ottoman_Empire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사케리 장군.

 

 

오스만 제국의 잔여 병력을 모두 격퇴한 사케리 장군은 비로소 베니스의 아테네로 향했고,

그곳에서 베니스 원정군 최대 전력과 맞붙게 된다.

모레아 지방을 잃은 베니스군은 아테네에서 철저 항전하기로 한다.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것이다 제군들. 허나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이방인들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했다!"

"그보다 나은 환경인 이곳에서 질 이유는 없다 돌격하라!"

결의 찬 돌격 명령이였다. 사실 사케리 장군은 이곳에서 패한다면 퇴로 역시 없었기에,

아프리카 때의 전쟁보다 더 위험한 전쟁이였으나, 사케리 장군의 지휘로 아테니까지 함락하였다.

이때가 1713년 봄이였다.

 

데미 캐논을 발포하여 성벽을 공격하는 사보이아 군.
성벽사이로 돌격하는 베니스 군을 포위 사격중인 사보이아 군.

 

비교적 평안한 토리노 왕궁

 

이에 반해 베니스의 모레아와 아테네를 함락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아메데오 2세는

"이제야 좀 편안해지는군. 베니스 놈들 사보이아 공국에 맞선다는게 어떤건지 뼈저리게 느껴볼 것이야."

안심한 아메데오 2세는 그리스 원정지역에 대부분이 병력이 있던 베니스군이였기에 스페인과 함께 급습하여

수도를 급습하여 베니스를 멸망시킨다.

 

 

1713년 당시 사보이아 공국의 세력도(검은색 포함).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아프리카 침공을 염려했던 사케리 장군으로썬, 그리스 지역 함락으로 만족할순 없었다.

아테네의 모든 병력을 이끌고 동맹국인 오스트리아 병력과 함께 이스탄불을 급습해 오스만 제국의 경제에

타격을 입히는 동시에, 거꾸로 아프리카와 그리스반도에서 오스만 지역의 양동을 할 작정이였다.

이스탄불의 점령에는 성공하였으나, 사케리 장군의 생각처럼 일이 흘러가진 않았다.

"우리는 전쟁으로 인한 피로도가 높소. 더이상의 진군은 그만 멈추고 방비를 하도록 하시오."

"또한, 수도에서의 더이상 병력 지원은 없을터이니, 군이 필요하다면 그 지역에서 차출하시오."

토리노 왕궁에서 온 서신은 군의 사기를 떨어트리기에 적합했다.

 

이스탄불을 점령했을시의 비토리오 사케리 장군.

 

해상무역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부를 획득중인 사보이아 공국.
접근하는 오스만 제국 병력들.

 

오스만 제국은 빼앗긴 이스탄불을 탈환하려는 움직임이 보였고, 본국으로부터의 지원이 없는 사케리 장군은,

이스탄불을 뒤로 하고 야전으로 오스만 제국의 병력을 각개격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개낀 전장속 사보이아 군과 오스만제국 군.
돌진하는 오스만 제국과 일제사격하는 사보이아 전열보병.
돌진하는 사보이아 기병대.

 

몇번의 전투로 사케리 장군은 오스만 제국을 후퇴시켰으나, 끊임없는 병력의 증강은 결국 우리군의

패배를 불러올 것은 불보듯 뻔했다.

"왕궁에선 수비만 하라 했으나, 현재는 전시이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 했으니, 모두 나를 따르도록 하라"

그렇게 오스만 제국의 두번째 도시인 앙카라로 향하는 사보이아 군이였다.

 

앙카라로 진격중인 사보이아 군.
증원되는 오스만 제국.
각개 격파하려는 사케리 장군의 군대.

 

앙카라로 향하는 사보이아 군을 발견한 오스만 제국은 거듭 증원병력을 보내 앙카라 수비에 힘을 보태려 했으나,

사케리 장군은 길목에서 이를 요격하여 격파할 태세를 갖춘다.

 

대치중인 사보이아 군과 오스만 제국.
패주하는 오스만 제국 예니체리 병.
오스만 제국에 일제 사격중인 2개 중대.

 

도시 앙카라를 두고 싸운 첫 전투에서는 비토리오 사케리 장군의 군 운용으로 병력 손해가 전무하다 싶은 대승을 거두었으나, 거듭되는 오스만 제국의 증원은 얕볼 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거듭 충원되는 오스만 제국의 병력.
포위당한 도시 앙카라.
다가오는 오스만 제국의 소수 증원병력.
앙카라 공방전.

 

 

결국 1713 봄부터 시작한 싸움은 1713년 가을까지 이어졌다.

1차 아나톨리아 전투(1713년 4월) 사보이아 군 총병력 10870명 오스만제국 7580명 야전승리

2차 아나톨리아 전투(1713년 6월) 사보이아 군 총병력 1만여명 오스만제국 3000~5000여명 야전승리

3차 앙카라 공방전(1713년 9월) 사보이아 군 총병력 10930명 오스만제국 14410명 사보이아군 승리

앙카라 공방전 까지 이어진 사케리 장군의 사보이아군과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사보이아군은 마지막전투에서

총병력 10930명으로 전투에 임해 사망 1140명 생존 9790명인데 반해 오스만 제국은 총병력 14410명중

사망 14150명 생존 260명으로 이 전투를 기점으로 오스만제국은 사보이아군에게 승기를 빼앗기게 된다.

 

 

앙카라 공방전 당시 사보이아군의 배치.
난전중인 앙카라 외곽지역.
폭팔 수류탄을 투척하는 사보이아 척탄병.
대승을 거둔 사보이아군.
함락된 아나톨리아 지방.

 

힘든 전투로 인해 앙카라 지방을 함락한 사보이아 군. 

오스만 제국은 두 도시를 빼앗김으로써 그 영향력이 줄어든데에 반해, 

자의든 타의든 사케리 장군에 의해 세력확장이 불가피해진 사보이아 공국.

토리노 왕궁에선 거듭되는 연전연승에 별다른 문책은 없었고,

오히려 이로 인해 공국에서 왕국으로 승격해야할 필요성을 느끼며 국명 또한 샤르데나

왕국으로 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팽창으로 인한 영향력은 다른 나라의 눈초리를 받게 되는 억제력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이때의 토리노 왕궁은 그저 승리에 취해있을 뿐이였다.

또한 오스만 제국 또한 아직 건재했으니 역사의 뒷 이야기는 아직 모를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