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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워 : 엠파이어 - 4화 포화속 격화되는 전쟁 본문
시작에 앞서
본 게임 연재는 지독한 역사적 상상 + 컨셉플레이로 취향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 게임 내 턴제 년수는 12턴으로 1년씩 늘어납니다.
- 게임 내 병력표기를 역사적 상상에 맞도록 병력뒤에 0을 하나 더 붙여서 표기합니다.(ex 120 - 1200명)
- 게임 내 재화는 파운드로 표기. 금액의 뒤에 만을 붙여 현실감을 더합니다. (ex 100 - 100만 파운드)
- 장군들의 이름이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고, 가상 장군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사보이아 공국에서 샤르데나 왕국으로 명칭을 변경한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영향력이 커지자, 오스만 제국 외에도 대영제국과의 관계가 조금씩 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안을 토리노 왕궁이 알리가 없었고, 전선에서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한참 치르는 사케리 장군은 더더욱 알리가 만무했다.


오스만 제국의 발타치 메흐메트 장군의 6600명 가량의 군이 앙카라를 급습했으나, 약 9800명 가량의 사케리 장군이 수비하는 앙카라는 쉽게 함락되지 않았으나, 오스만 제국의 주변 마을 약탈과 교란은 사케리 장군에게도 큰 고민거리였다.
"주변 마을이 거듭 약탈을 당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보고를 들은 비토리오 사케리 장군은 눈썹을 찌푸리며 휘하 병사들에게 알린다.
"말을 준비하게나 직접 나가서 오스만 제국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어."





한차례 야전 요격으로 오스만 제국군을 패퇴시켰으나, 여전히 아나톨리아 지방에서의 약탈을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더 소규모 부대로 나누어 주변 마을 약탈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런 전술은 비토리오 사케리 장군에게는 매우 골치아픈 일이였고, 더구나 점령지인 앙카라의 민심에 매우 부적절했다. 거듭되는 약탈은 앙카라 주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후에 지방 반란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먼저 처리해야 하는 사안이였으나, 토리노 왕국에서의 추가 지원병력도 없는 상태로 작전을 펼치기엔 사케리 장군 입장에서는 무리가 있었다.


1714년 3월까지 지속된 오스만 제국의 약탈로 아프리카 방면의 트리폴리타니를 지키고 있던 노장 미켈란젤로 리가부에 장군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샤르데나 왕국으로써는 카이로의 바로 옆 최전선을 비워두고 앙카라에 집중한다는 것은 잘못하면 오스만제국의 아프리카 점령을 막지 못할수도 있는 극악의 수 였다. 하지만 사케리 장군에겐 별다른 수가 없었다. 샤르데나 왕국으로 승격했어도 사보이아 공국때부터 총 사령관의 직위를 얻었던터라 전장에서의 병력운용은 모두 사케리 장군의 몫이였고, 앙카라를 비우면서 야전을 거듭하면 자칫하면 앙카라를 빼앗겨 아나톨리아 지방을 포기해야할 수도 있기에, 흑해지역을 품은 이곳과 사막의 진군속도를 감안하면, 트리폴리타나를 잃는다해도 튀니스를 지킬 시간정도는 벌수 있으리라 판단했던 것이다.

"드디어 나도 전쟁다운 전쟁을 하는군"
소규모의 오스만 제국군을 물리친 후 말하는 리가부에 장군이였다.
따지고보면 트리폴리타나까지도 사케리 장군이 점령하고, 수비군 대장으로 임명되었을뿐, 리가부에 장군이 사케리 장군보다 나이는 많다 해도 전투경험은 전무했었다.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하고, 으쓱해진 리가부에 장군이라 하지만 오스만 제국군도 정예인지라 전투경험이 없었던 리가부에 장군에겐 소중한 경험이였다.


오스만 제국은 육지에서의 연패를 만회하고자 샤르데나 왕국의 무역로를 급습하게 된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와 인도, 아시아 지역에서의 무역거점에 타격을 입게 되고 샤르데나 왕국은 결국 파산의 문턱까지 재정의 위협을 받게 된다. 오스만 제국으로써는 신의 한수였으며, 샤르데나 왕국으로써는 뼈아픈 실수였다. 물론 근방에 샤르데나 왕국의 함대가 있긴 했으나, 왕국의 전투함대는 지중해에서 활동중이였으며, 무역선만 원정항해를 나가있던 터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당장 당장 저 뻔뻔한 오스만제국의 사략함대를 쳐부수어라" 샤르데나 왕국의 국왕인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는 격노했다.




간신히 샤르데나 왕국의 파산을 막아낸 토리노 왕궁. 하지만 무역로를 급습한 오스만 제국의 사략함대를 처리하지 못했고, 임시방편일뿐이였다. 세율을 올려 각지의 불만이 심해지면 샤르데나 왕궁은 내부적으로 무너지게 될 것은 불보듯 뻔했다. 아나톨리아 지방에서는 여전히 오스만 제국의 침공이 진행되고, 사케리 장군은 리가부에 장군과 함께 정예병 20190명으로 앙카라로 향하는 오스만 제국 메흐메트 장군의 6200명에 맞서 다시 한번 전투를 치루게 된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샤르데나 군은 군을 나누어 정예군인 사케리 장군이 앙카라의 수비를 이제 막 전선에 참전한 리가부에 장군이 야전군을 맡게 된다.







두차례의 회전으로 오스만 제국을 밀어내는 샤르데나 왕국이였으나, 여전히 오스만 제국의 게릴라 전술은 끝나지 않았고, 해상무역로의 노략질 역시 병행하고 있었기에, 샤르데나 왕국으로썬 적잖은 부담이였다. 이에 지중해에서 방어중이던 세바스티아노 베빌라쿠아 제독을 위시한 샤르데나 왕국 1함대는 동 대서양으로 도주하는 사략함대를 추격해 섬멸하고, 재해권 확보에 만전을 기하여 점차 국고는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샤르데나 왕국의 적은 오스만 제국만이 아니었다. 상아무역으로 재미를 보던 아프리카 동부지역에 해적선단이 출몰해 자국의 무역선단을 기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토리노 왕궁은 이 사실을 알리 없었고, 무장선 없이 무역선만 가득했던 상아 무역선단은 아프리카 해역에서 속속들이 침몰하고 있었다. 이는 후에 샤르데나 왕국의 극심한 자금난을 불러오게 된다.






"야전만으로는 오스만의 소수부대를 막을 길이 없다. 근거지를 공략하러 가겠다" 아르메니아 지역의 예레반을 망원경으로 바라보며 말하는 리가부에 장군. 어느덧 몇회의 오스만 제국군과의 전투로 인해 유능한 장군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를 따르던 병사들도 역시 신병들이였으나, 어느덧 베테랑들이 되어 한중대의 힘도 무시할 수준을 넘어선 리가부에 부대는 군을 이끌고 예레반을 습격하기에 이른다. 1715년 6월 토리노 왕궁으로부터 원정무역 선단들의 복귀가 늦어진다는 보고를 받은 베빌라쿠아 1함대는 아프리카 해역으로 직접 출정하여, 1715년 9월 아프리카 해역에서 해적선단과 마주쳐 대승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베빌라쿠아 1함대의 피해도 커서 이 한번의 해전으로 다시 복귀해야 했고, 아프리카 해역에 보낼 무역선단의 건조에 샤르데나 왕국은 온힘을 쏟게 된다.



"적의 수는 많지 않다. 각 보병 중대는 포위섬멸로 적을 칠것이다. 기병대는 나를 따르라"
예레반을 공략중인 리가부에 부대는 소수의 병력만으로 지키고 있는 예레반에 기습을 가했다. 전투는 예상대로 흘러갔으며, 예레반의 성벽이 없는 관계로 적은 요격을 택했고, 수적으로 유리한 샤르데나 왕국군을 오스만 제국은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르메니아 지역을 점령한 리가부에 장군은 어느덧 샤르데나 왕국을 혼자 지탱하던 사케리 장군에겐 큰 복이였다.





오스만 제국과의 싸움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샤르데나 왕국. 점점 그 위세가 대단하여, 강대국들은 그 눈을 샤르데나 왕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르메니아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어느새 국경은 러시아와 마리타연합과 맞닿아 있었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대영제국 또한 샤르데나 왕국을 주시하고 있었으나 토리노 왕궁에서는 서아프리카 해전 이후, 무역선단의 보호와 전투함대의 필요성을 느껴 국고의 대부분을 육군이 아닌 해군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전선이 늘어짐에 따라 육군의 부담은 커가기만 했으나, 왕궁에서는 부의 부족함을 참을 수 없었기에 이는 군인인 두 장군에겐 불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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