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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하임 전투(Battle of Blenheim) - 치열한 전투 본문

역사

블렌하임 전투(Battle of Blenheim) - 치열한 전투

rheinland 2025. 2. 7. 16:46

 

전열보병의 사격

전장

전장은 거의 4마일(6.4km)에 걸쳐 뻗어 있었다. 프랑스-바이에른 연합군의 최우익은 다뉴브강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고, 최좌익에는 슈바벤쥐라(Swabian Jura)의 소나무 언덕이 있었다. 프랑스-바이에른 연합군의 정면에는 작은 네벨(Nebel) 강 (강변의 양쪽 땅은 모두 부드러운 진흙으로 덮혀 있고, 대부분 지역을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이 위치해 있었다. 프랑스군의 우익은 네벨 강이 다뉴브강에 합류하는 블레넘(Blenheim)의 마을에서 주둔하고 있었다. 마을은 벽, 울타리, 울타리로 둘러쌓인 정원, 그리고 목초지 등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블레넘과 그 다음 마을인 오블레글류(Oberglau)의 마을 사이의 평원은 그루터기 밭으로 나뉜 밀밭으로 덮여 있었고, 병사들을 배치하기에 이상적이었다. 오블레글류에서 루징겐(Lutzingen)의 작은 마을에는 수로 지대가 있었고, 이 지대에 있는 덤불과 가시 잡목들은 공격자에게 방해가 되고 있었다.

초기의 책략

8월 13일 정오쯤 군대의 배치도. 말버러는 좌익의 동맹군 군대를 이끌고 블레넘과 오베르글라우를 공격했다. 그동안 외젠은 우익을 지휘하여 루징겐을 공격했다.
8월 13일 2시, 40개 기병 대대가 적진을 향해 진군을 개시했고, 3시가 되자 8열 종대로 이루어진 동맹군의 주력이 케셀(Kessel)을 넘어 진군하기 시작했다. 약 6시가 되자 그들은 블레넘에서 2마일(3킬로미터)떨어진 슈베닝겐(Schwenningen)에 도착했다. 슈베닝겐에 머물던 영국과 독일의 군세는 밤에 합류하여 진군을 계속했고 남은 군대를 9열 종대로 구성했다. 말버러(Marlborough) 공작과 외젠(Eugene) 공작은 그들의 마지막 계획을 세웠다. 동맹군 지휘관들은 외젠 공작은 16,000명을 거느리고 프랑스-바이에른군의 좌익에 배치된 선제후와 마르생의 23,000명의 군세를 공격하는 동안 말버러 공작이 36,000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프랑스-바이에른 연합군의 우익에 배치된 탈라르(Tallard) 원수의 33,000명의 군세를 격파하고 블레넘을 점령한다는데 동의하였다. 만약 프랑스-바이에른 연합군의 좌익에서 외젠 공작의 공격이 시작된다면 선제후와 마르생은 탈라르의 우익을 지원하기 위해 병사를 보낼 수 없을 것이었다. 외젠 공작이 적의 좌익을 공격하는 동안 존 커츠 중장(John cutts)이 블레넘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프랑스의 좌우측면이 동요하는 동안 말버러 공작은 네벨 강을 건너 중앙에 있는 프랑스 군에게 치명타를 입히기로 했다. 그러나 말버러 공작은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외젠 공작이 제 위치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탈라르는 동맹군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전날 데 실리(De silly)에 의해 체포된 포로로부터 얻어낸 정보에 속았고 또한 자신이 유리한 상황에 있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탈라르와 그의 동료들은 말버러 공작과 외젠 공작이 결국 뇌르틀링겐(Nördlingen)을 향하여 동북쪽으로 퇴각할 것이라 생각했다.  탈라르는 루이 14세에게 이날 아침 동맹군이 그의 진지 반대편에 나기 직전에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메로드 웨스테르(Mérode-Westerloo)가 기술하기를 "나는 9열 종대를 이룬 거대한 적군이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뉴브에서 숲까지의 모든 지평선을 가득 채웠다." 흩어진 징발대를 모으기 위해 신호포가 발사되고, 프랑스와 바이에른 연합군이 예상하지 못한 적의 출현을 알리기 위한 신호탄이 발사되었다.

약 8시경 우익에 있던 프랑스 군의 포병대가 동맹군 블러드 대령의 포병 중대의 사격에 대응해 발포를 시작했다. 포격은 잉골슈테트(Ingolstadt)에 있는 바덴의 루이공에게까지 들렸다고 한다. "말버러 공작과 외젠 공은 오늘 서쪽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바덴의 루이공은 오스트리아 황제에게 전했다. "하늘이 그들을 돕기를." 한 시간이 지나 탈라르와 선제후, 그리고 마르생은 마지막 전투 계획을 세우기 위해 블레넘의 교회탑에 올라왔다. 선제후와 마르생은 오블레글류의 언덕 앞에서 전위를 담당하고 탈라르는 다뉴브와 오블레글류 사이의 지역을 방어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장군들은 정면의 네벨 강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갈려 있었다. 탈라르의 전략은 보병대를 네벨강 가까이 배치하고 싶어하는 마르생과 선제후와는 달랐다. 탈라르는 동맹군을 끌어들인 뒤 기병 돌격을 통해 적을 혼란시키고 패주시키기를 원했다. 또한 적이 늪지대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블레넘과 오블레글류에서 십자포화를 쏟아부을 수 있을 것이었다. 계획은 모든 부분이 적절하게 이루어졌으면 훌륭했을 것이지만, 결국 말버러 공작이 별다른 저항 없이 네벨 강을 동하하여 그의 계획대로 군대를 움직이도록 허용하고 말았다.

배치

프랑스-바이에른의 배치는 다음과 같았다. 좌익의 루징겐에서 마페이(Maffei) 장군은 마을의 외각에 16대의 포와 5개의 바이에른 보병대대를 배치하였다. 루징겐의 왼편에 있는 숲으로 루젤 후작(Marquis de Rozel) 휘하의 7개의 프랑스 보병대대가 자리잡았다. 루징겐과 오블레글류 사이에는 선제후가 27개의 기병대대를 이끌고 있었다. 다르코(d'Arco)가 14개의 바이에른 기병대를 이끌고, 볼프람스돌프(Wolframsdor)가 이끄는 13개의 바이에른 기병대대가 지원을 위해 근처에 배치되었다. 그들의 오른쪽에 마르생이 지휘하는 40개의 프랑스 기병대대와 12개의 보병대대가 정렬해 있었다. 오블레글류에는 브란빌 후작(Marquis de Blainville)의 지휘를 받는 14개의 보병대대가 지키고 있었다.(이들 중에는 와일드 기즈(Wild Geese)라 불리는 강력한 아일랜드 용병부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6개의 포병부대는 마을의 옆면에 따라 배치되어 있었다.  프랑스-바이에른 연합군의 우익인 오블레글류와 블레넘 사이에는 탈라르가 64개의 프랑스와 왈룬 기병대대(마르생으로부터 16개를 차출했다.)를 회흐슈테트(Höchstädt)도로의 근처에 배치하고 9개의 프랑스 보병대대가 지원하도록 하였다. 블레넘 옆의 보리밭에는 드 로이(De roi)여단의 3개의 보병대대가 배치되었다. 클레람바 후작(Marquis de Clérambault)이 지휘하는 9개의 보병여단이 마을 자체를 접수했다. 4개의 보병 대대가 후방에 배치되었고, 11개의 보병대대는 예비대로 준비하였다. 이 보병대대들은 오트푀유(Hautefeuille)가 지휘하는 12개 하마 용기병 기병대대에 의해 보조받고 있었다. 11시까지 탈라르와 선제후, 마르생은 제 위치에 있었다. 많은 동맹군 장성들은 이와 같이 좋은 위치에 있는 상대를 공격하는 데 주저하고 있었다. 오크니 백작 조지 더글라스 헤밀턴(George Douglas-Hamilton, 1st Earl of Orkney)은 나중에 고백하길 "만약 나에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나는 반대했을 것이다."

외젠 공은 11시에 정해진 위치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수로와 적의 포격 때문에 진격은 느렸다. 커츠 경의 여단은 10시에 네벨 강에 있는 물레방앗간에서 적을 쫓아내고, 이미 강가에서 블레넘을 향하여 배치했고, 근처 마을에서 날아오는 6대의 포에서 날아오는 사격을 견뎌냈다. 경사진 지대에서 그들의 위치를 기다리던 말버러 공작의 군대 중 나머지는 프랑스 군대의 사격을 견뎌야만 했고, 공격을 시작하기도 전에 2,000명의 사상자를 기록했다. 엔지니어들이 네벨 강의 석교를 고쳤고, 블레넘과 오블레글류 사이의 소택지대를 건널 다섯 개의 다리 또는 둑길을 놓았다. 마침내 12시가 되자 케도건(Cadogan)이 말버러 공작에게 외젠 공작이 지휘하는 프로이센과 덴마크 보병대가 제 자리에 배치되었다고 알려왔고, 곧 장군의 진격 명령이 내려졌다. 13시에 외젠 공이 동맹군의 우익에 있는 루징겐에 돌격하는 동안 좌익의 커츠는 블레넘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블레넘

블레넘 궁전에 있는 블레넘 전투 테피스트리. by Judocus de Vos. 네벨 강에 있는 블레넘 마을을 배경으로 중간에 있는 2개의 물방앗간을 교두보로 확보하기 위해 최전선에 나타난 영국 척탁병과 포로가 된 프랑스 부대.
커츠는 아키발드 로우(Archibald Rowe) 준장의 여단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영국 보병대는 네벨의 강 끝으로부터 출진하여 150야드(~130m) 떨어져 있는 블레넘을 향하여 조용히 진군하기 시작했다. 오트푀유(Hautefeuille)의 용기병에 의해 보호받는 존 퍼거슨(John Ferguson)의 영국여단이 로우의 좌익을 지켰고, 보병대는 마을과 강 사이에 있는 바리케이트를 향하여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거리가 30야드(27m)에 접근 했을 때 프랑스군이 치명적인 일제사격을 가했다. 로우는 그의 검이 적의 목책에 다다랐을 때 더 이상의 사격은 없을 것이라 호언했다. 그러나 그가 신호를 위해 다가갔을 때, 로우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살아남은 부대의 통솔자들은 분열된 군세를 정비하고 정면 돌격을 시작했다. 작은 부대들이 수비자들을 돌파했으나 프랑스의 일제사격은 영국군을 강가로 몰아넣었고 대량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공격이 흔들리자 스위스의 숙련된 장교 비트 자크 폰 줄라우벤(Beat-Jacques von Zurlauben)의 지휘를 받는 정예 젱다르망(Gens d'Armes)의 8개의 기병 대대가 영국군을 습격하여 노출된 로우의 연대의 측면을 파고 들었다. 그러나 물가의 소택지대의 근처에 배치된 위케스(Wilkes)의 헤센 여단이 적군의 꾸준한 공격에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이를 격퇴하고, 영국군과 헤센군은 재정렬하여 다시 공격하였다.

비록 동맹군은 다시금 격퇴되었지만, 이 블레넘에 대한 끈질긴 공격은 결실을 맺었다. 블레넘에 대한 수비를 맡은 클레람바 후작은 이날 프랑스군 최악의 실수로 꼽히는 명령을 내렸다. 탈라르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클레람바는 모든 예비 보병 대대에 마을로 투입시켰고, 이에 따라 프랑스군 배치가 무너지면서 프랑스 군의 수적 우위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메로드 웨스테르가 쓰기를 "군대가 너무 과밀하게 몰려들어와 그들은 사격을 못할 지경이었으며, 명령을 받지도, 수행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이 실수를 목격한 말버러 공작은 이제 커츠에게 세 번째 공격 명령을 내리면서, 단지 블레넘의 적을 묶어두도록 하였다. 5,000명정도도 안 되는 동맹군은 두 배나 되는 프랑스의 보병과 용기병 부대를 묶어둘 수 있었다.

루징겐

“ 외젠 공작과 황제군은 세 번이나 격퇴되었고, 숲으로 물러났으나 진짜 승리를 얻었다. ”
— 메로드 웨스테르

동맹군의 우익에 외젠 공작의 프로이센, 덴마크 군은 선제후와 마르생이 지휘하는 수적 우위를 지닌 군대와 힘겹게 전투하고 있었다. 안할트데사우 공작(Prince of Anhalt-Dessau)은 네벨 강을 건너 루징겐의 요새화된 도시를 돌격하였다. 여기서 네벨 강은 장애물이 장애가 되지 못했지만, 마을의 외각에 위치한 프랑스-바이에른군의 포병대는 슈벤네바흐(Schwennenbach)의 작은 마을에까지 펼쳐진 개활지에 확실한 포격을 가할 수 있었다. 보병대가 강을 건너자, 그들은 마페이의 보병대에 공격을 받았고, 마을 앞과 우익의 수풀에 위치한 바이에른 포병이 일제사격을 가했다. 프로이센 군은 많은 사상자에도 불구하고 포병대를 공격했고, 숄텐(Scholten) 백작이 지휘하는 덴마크군은 프랑스 보병대를 마을 너머로 밀어내려고 하였다.

보병대가 힘겨운 전투를 벌이는 동안, 외젠 공작의 기병대가 네벨 강을 건넜다. 제국 기병 대장 하노버의 막시밀리안 공작(Prince Maximilian of Hanover)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 기병대의 1열은 마르생이 지휘하는 기병대 2열에 의해 압박을 받았고, 혼란상태에 빠져 네벨 강을 건너 되돌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 프랑스 군은 이 이점을 살리는 데 실패하였고, 2개의 기병부대는 그들의 재집결을 시도하였다. 그 동안 기병대의 지원 없이지면서 포위를 당할 위험을 안게 되자 프로이센과 덴마크 보병대는 네벨 강을 건너 후퇴해야 했다. 외젠 공작 부대의 일부는 혼란상태에 빠진 채로 강물을 건너야 했고, 바이에른군은 10개의 보병대 깃발과 수백 명의 포로를 얻었다. 이는 오직 외젠 공작과 프로이센 왕자의 리더쉽이 오스트리아군이 패주하여 전장을 떠나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슈벤네바흐의 근처(그들의 시작점보다 후방에 위치해 있다)에서 그의 군대를 재집결한 후에 외젠 공작은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고, 이는 뷔르템베르크-테크의 공작(Duke of Württemberg-Teck)에 이해 지휘되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루징겐과 오벨르글류의 포병대로부터 살인적인 십자포화를 당했고, 다시 한 번 패주했다. 프랑스와 바이에른은 그러나 그들의 목표에 거의 혼란을 느끼던 상태였고, 그들은 역시 "말에 올랐다가 내렸다가, 그의 병사들을 새롭게 격려했다."라고 묘사된 선제후와 같은 그들의 사령관들로부터의 격려가 필요했다. 안할트-데사우의 덴마크-프로이센 보병대는 두 번째 공격을 개시했으나 적절한 지원 없이는 진격을 유지할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그들은 강을 넘어 퇴각했다.

돌격하는 기병대


중앙과 오베르글류

“ 그들은, 건널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땅인 소택지대와 네벨강을 가능한 한 빨리 건너기 시작했다. ”
— 처칠의 군종 신부.

블레넘과 루징겐에서 이러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동안에 말버러 공작은 네벨 강을 건널 준비를 하였다. 중앙에서 공작의 남동생인 찰스 처칠(Charles Churchill)이 지휘하는 18개의 보병대대가 두개의 라인을 구성하여 진격하였다. 1열의 7개의 보병대대는 네벨 강을 건너 거점을 확보하고, 2열에 위치한 11개의 보병대대는 후방에서 강을 건너는 동맹군을 보호했다. 보병대의 전위와 후위 사이에는 72개의 기병대대가 있었다. 보병대 1열은 강을 먼저 건너 뒤따라 오는 병력이 편히 강을 넘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때까지 진격하였다. 1열은 곧 전열 사이사이에 기병대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을 두어 기병대가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확보하고 기병대의 이동을 엄호하였다.

말버러 공작은 진격을 명령하였다. 줄라우벤(Zurlauben)의 젱다르망이 이끄는 프랑스 기병대는 블레넘 방면의 커츠의 군대와 찰스 처칠의 보병대 사이의 공간을 파고들어, 두 영국군 사이를 연결하는 룸리(Lumley)의 영국 기병대에 돌격을 감행했다. 프랑스의 정예기병대가 공격을 시작하자마자 그들은 프란시스 팜스(Francis Palmes)대령이 지휘하는 다섯 개의 영국 기병대대와 마주하게 되었다. 놀란 프랑스군의 젱다르망은 혼란에 빠졌고, 블레넘을 통해 흐르는 말루베어(Maulweyer)의 너머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이 가능한가?" 선제후가 외쳤다. "프랑스의 신사들이 달아난다고?" 팜스는 기세를 몰아 공격을 감행하려 하였으나, 프랑스의 기병대 일부와 블레넘 외곽에서의 머스킷 사격에 의해 혼란에 빠져 격퇴당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라르는 젱다르망의 패퇴소식에 놀라 마르생에게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러나 사력을 다해 두 번째 공격을 개시한 외젠에 공격받고 있던 마르생은 이를 거절했다. 탈라르가 마르생과 의논하는 동안 클레람바는 계속 남은 예비 보병대를 블레넘에 밀어넣고 있었다. 탈라르는 이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중앙에 있는 적의 대군의 반대에 방향에 있는 회흐슈테트 근처로 9개의 보병대대를 이끌고 휴퇴하였다. 줄라우벤 기병대는 프랑스쪽 강가로 넘어온 동맹군을 방해하고자 계속해서 노력했다. 그의 전위 기병대는 네벨 강 쪽으로 난 경사를 이용하여 돌진했다. 그러나 공격은 손발이 맞지 않았고, 동맹군의 보병대의 끊임없는 사격은 프랑스 기병대를 혼란시켰다. 이 사소한 접전 중 줄라우벤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고, 이틀후에 사망했다. 이때 시간은 15시를 지나고 있었다.


오블레글류에 대한 동맹군의 공격.

뷔르템베르크-웨스의 공작(under the Duke of Württemberg-Öels 외젠과 전투를 벌이던 뷔르템베르크의 공작과 혼동하지 말것.) 휘하의 덴마크 기병대는 네벨 강을 건너 오블레글류로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근처 마을에 있는 마르생 보병대의 저항을 받아 덴마크군은 강을 건너 후퇴했다. 호른(Horn) 백작 휘하의 네덜란드 보병대는 프랑스군을 강변으로 몰려고 하였다. 그러나 말버러 공작이 탈라르에 대해 주공격을 시작하기 전까지 오블레글류는 안전할 수 있었다.

호른 백작은 홀스타인-벡의 공작(Prince of Holstein-Beck)에게 오블레글류를 점령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그의 두 개의 네덜란드 여단은 프랑스와 아일랜드 군에 의해 격파되었고, 공작은 이 와중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포로로 잡혔다. 전투는 이제 균형을 이루었다. 만약 홀스타인 벡의 네덜란드군이 궤멸당한다면 동맹군은 둘로 나뉘게 된다. 동맹군 우익의 외젠 공작의 군대는 중앙의 말버러 공작의 군대로부터 고립되게 되고, 프랑스-바이에른 연합군은 전 지역에 걸쳐 교전을 할 수 있게 된다. 기회를 포착하고 마르생은 그의 기병대에게 외젠을 향하여 공격할 것을 명하고 그들의 우익을 돌려 운터글라우(Unterglau)의 앞에 배치되어 있는 찰스 처칠 휘하의 보병대의 측면을 노리게 하였다. 말버러 공작은(개인적으로 다둘 수 있는 임시변통의 다리로 네벨 강을 건넜다.) 헐슨(Hulsen)의 하노버 보병대대에게 네덜란드 보병대를 지원하라고 명령하였다. 애버록(Averock)휘하의 네덜란드 기병여단은 앞으로 보내졌으나 얼마 안 있어 수적 우위에 있는 마르생의 기병대대에 의해 물러나게 되었다.

말버러 공작은 이제 외젠 공작에게 헨드릭 푸거 백작과 그의 제국 중장기병 여단의 포위를 풀고 그들이 프랑스 기병대를 격파하는 것을 돕도록 요청했다. 비록 고전을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의 외젠 공작은 이 요구에 이 요구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여, 두 장군간의 신뢰와 상호 협력 관계를 보여주었다. 비록 네벨 강이 푸거와 마르생의 기병대 사이에 있었지만, 프랑스군은 그들 앞에 나타난 이 새로운 위협에 말버러 공작의 보병대를 공격하는 기회를 잃고 진형을 바꿔야 했다. 푸거의 중기병대가 돌격하여 유리한 위치를 이루었고, 마르생의 기병대를 혼란에 빠트렸다. 블러드 대령의 포병중대의 지원을 받아 이제는 브렌스볼트(Berensdorf)의 지휘를 받게 된 헤센, 하노버, 네덜란드의 기병대는 프랑스군과 아일랜드 기병대는 오베르글류로 밀려났고, 그들은 다시는 탈라르와 교전하려 하는 처칠의 옆을 위협할 수 없었다. 마을에 있던 프랑스 지휘관 블라인빌레 후작(Marquis de Blainville)은 상당한 부상자 숫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돌파

“ 프랑스군은 그들이 조각조각 분산되기 전까지는 내가 본 부대 중 가장 규율 있는 상태였다. ”
— 오크니 경(Lord Orkney)

16시까지 블레넘과 오베르글류의 적을 포위한 채로 18개의 보병대대의 지원을 받은 동맹군 핵심의 81개 기병대대(9개의 기병대대는 커츠(cutts)의 여단에서 교체되었다.)는 프랑스의 64기병대대와 새로 충원된 9개의 보병대대의 중앙부를 공격했다. 이제 전투의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다. 말버러(Marlborough)공작은 전위에 공격을 가하고 싶었고, 두 번째 격퇴당한 후 외젠(Eugene) 공작은 재정비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17시가 막 지났을 때 동맹군 전위는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 말버러 공작의 기병대 2개열은 그들 뒤에 있는 두개의 보병부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말버러 공작의 전선 바로 앞으로 움직였다. 메로드 워스테르(Mérode-Westerloo)는 블레넘에서 혼란에 빠진 프랑스군을 구해내려고 하였으나 클레람바(Clérambault)는 그의 군대에게 마을로 퇴각하라고 명령하였다. 프랑스 기병대는 룸리(Lumley)의 영국과 스코틀랜드 부대가 담당하는 동맹군의 좌익과 홈페스치(Hompesch)의 네덜란드 독일군이 맡고 있는 동맹군 우익에 대하여 한 번 더 공격을 감해하였다. 탈라르(Tallard)의 기병대대는 보병대의 지원을 없는 상황에서 지치고 피곤을 느끼는 상황이었으나, 동맹군 기병대 1열을 보병대까지 밀어내었다. 말버러 공작은 전투를 아직 승리로 이끌지 못한 상황에서 전장을 이탈하려고 하는 그의 기병 장교를 꾸짖었다.

“ 경, 그대는 실수를 하고 있소. 적은 이런 식으로 속이고 있소. ”
이제 공작의 명령은 본 불로우(von Bulow)와 오스트-프리즈 백작(the Count of Ost-Friese)의 지휘를 받는 동맹군 2진에게 돌격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이들은 중앙을 돌파하여 결국 탈라르의 지친 기병대를 궤주시켰다. 그들의 기병대가 뒤로 물러서는 것을 보고, 프랑스 보병대대의 잔여병력들은 절망적인 무용을 보여주며, 방진을 형성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는 헛된 일이었다. 프랑스 보병대대는 블러드 (Blood) 대령의 근접 포병 사격과 보병대의 집단 사격에 의해 압도되었다. 메로드 워스테르는 후에 이렇게 썼다.

“ 그들은 개활지의 오른쪽 너머에 있던 바로 그들이 서 있던 장소에서 죽어갔다. 누구의 지원도 받지 못한 채로... ”
퇴각한 탈라르의 주력군은 회흐슈테트(Höchstädt)로 퇴각하였으나, 그 마을에서도 안전하게 있지는 못했고, 대신에 3,000명의 프랑스 기병이 익사한 바로 다뉴브강 위로 뛰어들었다. 다른 이들은 기병들의 돌격에 의해 분산되었다. 그루그난(Gruignan)은 반격을 시도하였으나, 그는 동맹군의 승리에 의해 쉽게 격파당했다. 그의 진영 뒤에서 병력을 마지막으로 집결한 후에 전투를 독려하며 외치던 탈라르 원수는 궤주하게 되었고, 손더헤임(Sonderheim)으로 몰리게 되었다. 헤센 부대에 의해 포위되었던, 탈라르 원수는 헤센-카셀의 공작(Prince of Hesse-Kassel)의 보좌관 보이넨버그(Boinenburg)중령에게 항복했고, 아이드 드 캠프(aide-de-camp)의 말버러 공작에게 정중하게 보내졌다. 말버러 공작은 이 붙잡힌 프랑스 장군을 환영했다.

“ 제가 존경하는 군인에게 잔인한 불행이 드리워졌다니 매우 유감입니다. ”
경의와 친절 속에서 탈라르 원수는 말버러의 진영으로 보내졌다.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Blenhe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