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heinland 님의 블로그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War of the Austrian Succession) 본문

역사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War of the Austrian Succession)

rheinland 2025. 2. 20. 12:57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 거의 모든 국가가 참여했다.  파란색 : 오스트리아, 그레이트브리튼과 동맹.  녹색 : 프랑스, 프로이센, 스페인과 동맹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Österreichischer Erbfolgekrieg, War of the Austrian Succession, 1740년 ~ 1748년)은 거의 모든 유럽의 강대국이 얽힌 전쟁이다. 이 전쟁은 여자의 왕위 계승을 금지하는 〈살리카 법〉에 따라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합스부르크 왕가를 계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구실을 내세우며 각국이 개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슐레지엔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합스부르크 왕가와 프로이센이 벌인 전투에 후세의 군사적 관심과 역사적 의의가 집중되어 있다. 열강이 이 전쟁에 개입하였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전원이 전문적인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프로이센군의 뛰어난 전투력이었다. 프로이센군은 이전의 전형적인 군대처럼 용병들을 집결시킨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프로이센군의 편제는 당시엔 매우 이례적이었다. 심지어 병과를 조합하는 근대의 전술교리를 창안한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조차도 상당한 수의 용병을 운용했는데, 이는 직업적인 상비군을 운용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농민을 징발해서 만든 민병대는 효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서남독일, 네덜란드 및 벨기에 등의 저지대, 그리고 이탈리아는 이 지역에서 전투를 벌인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군의 군홧발 아래 짓밟혔다. 프로이센과 프랑스가 굳건한 동맹을 맺었고, 마찬가지로 합스부르크 왕가와 스페인 그리고 바이에른 선제후국이 이에 맞서 대항축을 이루었다. 유럽 각국은 각자의 이익과 30년 전쟁 혹은 그 이전의 우호관계에 따라 합종연횡을 거듭하며 양 세력 중 한쪽에 참여하여 전투를 벌였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적대국이던 대영 제국과 네덜란드 공화국으로부터 거의 대부분의 군수품을 지원받았다. 오스트리아와 동맹관계가 변했던 국가 중에는 사르데냐 왕국과 작센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이 전쟁은 1748년 엑스라샤펠 조약이 체결됨과 함께 종결되었다.

살리카 법 계승

1740년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녀의 아버지 카를 6세 자리를 계승받아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이자 오스트리아의 대공, 파르마의 공작이 되고자 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신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토를 계승하고, 자신의 남편인 로트링겐 공작 프란츠 1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선출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합스부르크 왕가를 여성이 계승할 경우 사단이 날 것임은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카를 6세는 독일의 여러 국가로부터 1713년 국사조칙을 준수해주길 요청하였고, 설득에 성공하였다.

문제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1573년의 브리크 조약에 의해, 브란덴부르크의 호엔촐레른 가문이 브리크 공국을 상속받으므로, 슐레지엔의 계승권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발생하였다. 프리드리히 2세는 이를 핑계로 국사조칙을 파기하고 1740년 11월 16일 슐레지엔을 공략하였다. 당시 마리아 테레지아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나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바이에른의 카를 알베르트는 남성인 자신이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로서, 직접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며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자신의 황위계승권을 주장하였다.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War_of_the_Austrian_Succession